로봇을 입는다, 웨어러블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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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장애인 복지관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이용하시는 분들을 여러 번 봤습니다. 바지 입듯 다리에 끼우고 핸들을 잡으면 로봇이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들어올려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솔직히 준비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카이스트 연구팀이 개발한 '워크온 슈트 F1'은 좀 다릅니다. 영화 '아이언맨'처럼 로봇이 스스로 착용자에게 다가와 장착되고,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도 혼자 일어서고 걸을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 기존 재활 로봇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입니다. 이 기술이 정말 일상에서 쓰일 수 있을지, 그리고 현장에서 느낀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스스로 다가와 입혀주는 자동 도킹 기술 일반적으로 웨어러블 로봇이라고 하면 착용자가 직접 몸에 기기를 고정하거나, 보조자가 도와서 벨트를 조이고 프로그램을 설정하는 과정이 필수였습니다. 제가 복지관에서 본 로봇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용자가 바지처럼 로봇을 입고 양쪽 핸들을 잡으면, 보조자가 뒤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해주고 등 뒤 터치스크린 패드로 시간과 강도를 설정했습니다. 이 과정에만 최소 5~10분이 걸렸고, 사용자 신체 사이즈에 맞춰 조절하는 일도 매번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워크온 슈트 F1은 이런 번거로움을 크게 줄였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착용자에게 로봇이 스스로 걸어가서 자동으로 연결되는 '도킹 메커니즘(docking mechanism)'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도킹 메커니즘이란 로봇이 착용자의 위치를 인식해 정확히 접근한 뒤, 골반과 다리 외골격을 자동으로 결합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출처: 카이스트](https://www.kaist.ac.kr)). 착용자는 발판에 발을 끼우기만 하면 로봇이 자세를 낮췄다가 다시 일어서면서 착용자를 함께 일으켜 세웁니다. 타인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로봇을 입고 벗을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자동화는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서, 장애인의 자존감과 ...

환상의 빛 (1995)

 솔직히 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어느 가족>이나 <아무도 모른다> 같은 따뜻한 가족 드라마만 봐왔던 제게, 1995년 장편 데뷔작인 <환상의 빛>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베니스 영화제 촬영상을 받은 이 작품은 한국에서 2010년대 후반에 재발견되며 컬트적 인기를 얻었는데, 저 역시 그때서야 이 영화를 알게 됐습니다. 왜 아무도 떠난 사람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을까요? 이 질문이 영화 내내 따라다닙니다.



설명 없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 유미코는 오사카의 좁은 아파트에서 남편 이쿠오, 갓난아들 유이치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평범한 밤, 이쿠오는 담배를 사러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철로 위에서 기차에 치여 사망합니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그 어떤 이유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이 장면이 제게 특히 충격적이었던 건, 고등학생 때 가장 친했던 친구를 교통사고로 잃은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 1학년 때부터 2년간 알바를 같이 했습니다. 가족보다 오히려 그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성인이 되고 취업하면서 연락이 뜸해졌고, 동창회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던 그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졸업 후 두세 번밖에 못 봤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은 아무도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지만, 저는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영화에서 유미코가 겪는 감정이 바로 이겁니다. "왜?"라는 질문만 남긴 채 떠나버린 사람 앞에서, 남겨진 사람은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를 '애도 불가능성'이라는 심리학 개념으로 풀어냅니다. 여기서 애도 불가능성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유를 찾으려는 심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제가 장례식장에서 친구 어머님께 처음으로 감사 인사를 드렸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도시락을 못 가져갔던 저를 위해 그 친구가 도시락을 두 개씩 싸왔던 기억이 났습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을 때, 저는 비로소 그 친구가 정말 떠났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영화 속 유미코처럼요.


미야모토 테루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극도로 느린 템포와 최소한의 드라마 전개로 유명합니다. 시네마토그래피 측면에서도 특별한데, 여기서 시네마토그래피란 영화의 시각적 구성, 즉 카메라 움직임과 조명, 구도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고레에다는 정지된 듯한 롱테이크와 자연광만으로 상실의 무게를 담아냅니다.


유미코가 겪은 상실의 핵심 요소:


- 예고 없는 이별 - 일상의 연속 속에서 갑작스럽게 끊긴 관계

- 설명 불가능한 동기 - 왜 떠났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

- 반복되는 트라우마 - 어린 시절 할머니가 "고향에 가서 죽겠다"며 떠난 기억의 재현


재발견된 걸작, 2026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


몇 년 후 유미코는 노토 반도의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홀아비 타미오와 재혼합니다. 조용하고 온화한 새 가족, 바다가 보이는 풍경, 천천히 흘러가는 일상. 하지지만 유미코 마음속 응어리는 여전합니다. 어느 날 마을에서 목격한 화장 장면은 그녀를 다시 과거로 데려갑니다. 밤바다로 나가 홀로 서 있는 유미코의 뒷모습에서, 저는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던 제 모습을 봤습니다.


2026년 현재, 이 영화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팬데믹 이후 우리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 한 채 떠나보낸 사람들, 그 이유를 묻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들. 고레에다가 1995년에 던진 질문이 30년이 지난 지금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겁니다.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을 '슬로우 시네마' 장르의 대표작으로 분류합니다. 슬로우 시네마란 빠른 전개나 극적인 사건 대신 일상의 리듬과 침묵, 정지된 듯한 시간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 기법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 감정의 폭발 장면도 없고, 카타르시스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두 번째 볼 때는 달랐습니다. 그 느림이 오히려 상실의 무게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유미코가 밤바다를 바라보는 긴 정적, 파도 소리만 들리는 장면. 거기에 모든 답이 있었습니다. 아니, 답이 없다는 게 답이었습니다.


현대 관객 일부는 여전히 이 영화를 "너무 느리다", "답답하다"고 평가합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제 경험상, 정말로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리듬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게 됩니다. 상실은 원래 느리고 답답한 겁니다.


고레에다는 이후 <원더풀 라이프>(1998), <아무도 모른다>(2004) 같은 작품으로 따뜻한 가족 드라마 작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환상의 빛>만큼 날카롭게 "이해 불가능한 상실"을 파고든 작품은 없습니다. 영화 제목의 '환상의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엔딩에서 유미코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모든 건 관객의 몫으로 남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친구가 왜 동창회에 나오지 않았는지, 왜 그날 그 길을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아마 영원히 모를 겁니다. 영화 속 유미코처럼, 저도 그저 그 질문을 안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게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컬트 영화로 재발견된 이 작품의 가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상실에 대한 정직한 시선 - 위로도 해답도 주지 않는 용기

2.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 - 1995년이든 2026년이든 상실의 본질은 동일

3. 시각적 완성도 - 베니스 영화제 촬영상 수상작답게 모든 프레임이 회화적


만약 당신이 최근 누군가를 잃었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별을 겪었다면, 이 영화를 권합니다. 답을 주진 않지만, 적어도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줄 겁니다. 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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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mOApm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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