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1995
1995년 개봉한 「러브레터」는 한 통의 편지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사랑과 상실의 의미를 묻는 영화입니다. 약혼자를 잃은 여자가 그에게 보낸 편지가 동명이인 여성에게 도착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저는 크리스마스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왜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회자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나 문자처럼 즉시 전달되지 않고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편지라는 매개체가 주는 설레임과 그리움, 그 시간차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밀도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편지의 온도 와타나베 히로코는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를 산악 사고로 잃은 뒤 2년이 지나도록 그를 잊지 못합니다. 어느 날 옛 주소록에서 발견한 그의 중학교 시절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데,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닿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답장이 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 후지이 이츠키로부터요. 저는 이 설정을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우연처럼 느껴졌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이게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된 장치인지 알게 됐습니다. 편지는 죽은 사람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기억을 향한 질문이었던 거죠. 히로코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이 몰랐던 약혼자의 과거를 조금씩 알아갑니다. 그가 중학생 때 어떤 소년이었는지, 누구를 좋아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청춘을 보냈는지요. 솔직히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도서관 장면이었습니다. 남학생 이츠키가 대출카드 뒷면에 여학생 이츠키의 얼굴을 몰래 그려 넣는 장면인데, 직접 고백하지 못한 채 책 속에 남긴 그 작은 흔적이 수십 년 뒤 발견되면서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는 순간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말로 하지 못한 감정이 시간이 지나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것, 그게 편지가 가진 힘이라는 걸 이 영화가 보여줍니다. 히로코는 처음엔 약혼자가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지만, 점차 그것도 그의 일부였음을 받아들입니다. 사랑은 현재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