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1997
명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장엄한 음악과 무겁게 가라앉는 결말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제가 본 전쟁 영화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1997년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저를 웃기고, 울리고, 다시 웃게 만들었습니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을 코미디로 풀어낸 로베르토 베니니의 연출은 지금도 논란이지만, 아카데미 작품상·남우주연상·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일반적으로 비극은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만큼 가볍고도 깊은 울림을 준 작품은 없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게임으로 만든 아버지, 귀도
영화는 1930년대 후반 이탈리아 아레초에서 시작됩니다. 유대인 청년 귀도 오레피체(로베르토 베니니)는 삼촌의 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서점 개업을 꿈꿉니다.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교사 도라(니콜레타 브라스키)에게 첫눈에 반한 귀도는 기발한 방법으로 그녀를 사로잡고, 결국 결혼에 성공합니다. 사랑스러운 아들 조슈아가 태어나고, 가족은 행복한 일상을 보냅니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그러나 조슈아가 다섯 살 생일을 맞은 날, 나치 독일군이 마을 유대인들을 체포합니다. 여기서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합니다([출처: 홀로코스트 기념관](https://www.ushmm.org)). 귀도와 조슈아는 수용소행 기차에 실리고, 유대인이 아닌 도라도 가족을 따라 자발적으로 기차에 오릅니다. 이 순간부터 영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릅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놀란 건 귀도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우리가 함께하는 특별한 게임이야. 1,000점을 모으면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받을 수 있어!" 수용소의 잔인한 노동, 굶주림, 가스실의 공포를 모두 게임 규칙으로 포장한 겁니다. 배고프다고 울면 점수가 깎이고, 소리를 지르면 실격이라며 조슈아를 조용히 숨깁니다. 일반적으로 홀로코스트 영화는 비극을 직접 보여주며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아버지의 상상력으로 그 잔혹함을 가렸습니다.
논란과 극찬 사이, 영화가 남긴 메시지
인생은 아름다워는 개봉 당시부터 비평가들 사이에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일부는 "홀로코스트를 코미디로 만드는 건 부적절하다" "현실을 왜곡하고 조롱한다"며 혹평했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좌우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고, 해외 언론도 처음엔 회의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이런 접근이 과연 괜찮은가 싶었습니다. 600만 명이 희생된 역사적 비극을 게임처럼 다루는 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로저 에버트 같은 유명 평론가는 "이 영화는 나치나 파시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극찬했습니다. 여기서 파시즘이란 극단적 민족주의와 독재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 이념으로,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무솔리니 정권이 대표적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역사를 신중하게, 그러나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룬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석권했고, 로튼토마토 신선도 80% 이상을 유지하며 상업적·예술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제가 다시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귀도는 아들을 속인 게 아니라 아들의 세계를 지킨 겁니다. 어린 조슈아가 수용소의 진실을 알았다면 트라우마를 겪었을 겁니다. 아버지의 거짓말은 아들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방패였습니다.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가볍게 만든 게 아니라, 비극 속에서도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주요 평가 포인트를 정리
- 코미디와 드라마의 균형: 전반부는 슬랩스틱 코미디, 후반부는 숨막히는 드라마로 구성되어 감정의 진폭이 큼
- 로베르토 베니니의 연기: 감독·각본·주연을 모두 소화하며 귀도라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음
- 역사적 책임감: 홀로코스트를 다루되 희생자를 모욕하지 않으려는 세심한 연출
보이지 않는 결말이 남긴 설렘과 슬픔
전쟁이 끝나갈 무렵, 귀도는 조슈아를 철제 상자에 숨기고 아내 도라를 찾으러 나섭니다. 하지만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총살당합니다. 죽기 직전에도 그는 조슈아가 볼 수 있도록 장난스럽게 걸어가며 손을 흔듭니다. 이게 아버지의 마지막 유머이자 사랑의 증거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가 해방됩니다. 조슈아는 상자에서 나와 탱크를 탄 미군을 보며 "우리가 이겼어! 탱크를 탔어!"라고 외칩니다. 성인이 된 조슈아의 내레이션이 이어집니다. "이게 바로 우리 아버지가 해준 게임이었어. 그리고 우리는 이겼다." 이 문장이 제게는 가장 슬펐습니다. 조슈아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그 게임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명작은 명확한 메시지를 남긴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귀도는 정말 죽었을까요? 영화는 그의 죽음을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총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가 어느 골목에서건 우스꽝스럽게 나타날 것만 같아 설레고 슬픕니다. 명작은 울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이 영화 때문에 한참을 울었습니다. 주인공이 슬픈 상황에 처해서가 아니라, 날 웃게 해줘서 울게 한 사람이 귀도였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제목 "인생은 아름다워"는 단순한 낙관이 아닙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망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처음엔 귀도의 긍정이 그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수용소까지 따라간 도라의 모습에서 깨달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감하게 만들어주는 인생,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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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mV539w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