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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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사랑을 이렇게 아프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19살 청년 토메크가 망원경으로 연상 여성 마그다를 훔쳐보는 관음증이라는 불편한 소재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관음증이란 타인의 사적인 행위를 몰래 지켜보며 성적 쾌감을 얻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스토킹 스릴러가 아니라, 사랑의 순수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강렬하게 느낀 건 토메크의 사랑이 환상에서 현실로 추락하는 순간의 아픔이었습니다. 이상화된 사랑이 현실과 충돌하는 순간 토메크는 고아원 출신으로 우체국에서 일하며 친구 어머니 집에 얹혀 사는 평범한 청년입니다. 그의 유일한 낙은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30대 예술가 마그다를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불편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키에슬로프스키는 토메크를 악당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행동 속에서 절박하고 순수한 감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토메크는 마그다에게 가짜 우편물 통지서를 보내거나,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면 가스 신고를 하는 등 접촉을 시도합니다. 이런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저는 그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밤 문을 열어놓고 그녀를 기다리는 모습, 그녀가 울 때 함께 아파하는 모습에서 토메크의 감정은 단순한 욕망이 아닌 이상화된 사랑(Idealized Love)에 가깝습니다. 이상화된 사랑이란 상대를 완벽한 존재로 여기며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속에서 사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고백 장면은 이 영화의 결정적 전환점입니다. 토메크가 용기를 내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자, 마그다는 냉소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녀는 여러 남성과 가벼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고, 사랑을 환상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마그다는 토메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유혹하지만, 토메크는 당황해 도망칩니...

어느 날, 사랑이 걸어왔다 2010년 (문 너머 로맨스)

 솔직히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우연이었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문 너머로 낯선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궁금해서 틀었는데, 예상과 완전히 다른 감정의 깊이에 당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맨스 영화라고 하면 화려한 만남과 드라마틱한 전개를 떠올리지만, '어느 날, 사랑이 걸어왔다'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 느린 재즈 선율, 그리고 상실의 무게를 견디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문 너머 로맨스, 기발한가 억지스러운가


많은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인 '문 너머 대화'를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클리셰와 억지스러운 기발함으로 가득 차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혹평했고, 스크린 데일리 역시 "반쪽짜리 요소들이 작품을 가라앉힌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설정이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샘의 호텔 방 화장실로 파이가 갑자기 뛰어들어와 문을 잠그는 장면은 분명 극적 장치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극적 장치란 관객의 몰입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상황 설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니 그 '인위성'이 오히려 두 사람의 진심을 더 순수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얼굴을 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솔직해질 수 있다는 역설이 작동한 겁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의 진짜 강점은 대화의 밀도에 있었습니다. 샘과 파이는 문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꺼냅니다. 샘은 사랑하는 아내 조세핀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음악을 완전히 포기하고 호텔 방에 틀어박혀 살고 있었습니다. 매일 밤 문을 열어놓고 아내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는 그의 모습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처럼 보였습니다. 


반면 파이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후 기억 상실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 상실이란 과거의 경험이나 정보를 떠올리지 못하는 상태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했지만, 문 너머에서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로맨스 영화는 시각적 매력과 신체적 접촉을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정반대입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샘이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하고, 파이가 문 뒤에서 그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두 사람을 연결하는 감정의 언어가 됩니다. 재즈 즉흥 연주처럼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관계의 발전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재즈 힐링과 상실 치유의 진정성


영화의 또 다른 축은 재즈 음악과 치유의 관계입니다. 샘은 한때 촉망받는 재즈 피아니스트였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건반 앞에 앉지 못합니다. 이는 단순한 슬럼프가 아니라 애도 과정(grieving process)의 일부입니다. 애도 과정이란 상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심리적 단계들을 의미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영화가 치유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많은 힐링 영화들이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식의 안이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치유가 선형적이지 않고 고통스러운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샘이 처음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손이 떨려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장면은 실제 트라우마 경험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일치합니다

파이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억 상실 캐릭터는 미스터리나 반전의 도구로 소비되지만, 이 영화에서 파이의 기억 상실은 정체성 혼란의 은유로 작동합니다. 정체성 혼란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녀가 샘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자신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타인과의 연결이 자아를 재구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솔직히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후반부의 전개였습니다. 두 사람이 마침내 문을 열고 서로를 마주하는 장면까지는 감동적이었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가 다소 장황하고 예측 가능했습니다. 감독 아자젤 자코브의 데뷔작이라는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재즈 곡들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특히 샘이 연주하는 곡들은 그의 감정 상태를 직접적으로 반영합니다. 재즈의 특성상 즉흥성과 자유로움이 강조되는데, 이는 샘이 점차 상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는 과정과 평행선을 이룹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재즈라는 장르가 단순한 배경 음악이 아니라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하는 서사적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느린 템포와 미니멀한 플롯 때문일 겁니다. 왓챠피디아 평점은 3.5점 수준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숫자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장면이 다른 사람에게는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건 "사랑은 때로 문 하나 사이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화려한 제스처가 없어도, 진심이 통하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점이 새삼 와닿았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진심이 담긴,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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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md7xbp5